계속 머물기

계속 머물기

목회 동역자들께 드리는 글, 28권

2023년 4월 4일           단 바움가트너

             계속 머물기

미네아폴리스에서 목회를 시작하고, 제 고향 시애틀에서, 그리고 거의 10년을 켈리포니아 헐리우드에서 그리고 지금은 캘리포니아 산타 로사에서 살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으로 45분 거리에 있는 잘 알려지지 (최소한 저에게는 2019년까지) 북가주에 있습니다. 우리는 제가 본 중에 가장 많은 포도밭과 아무도 세어보지도 않는 425개의 양조장이 있는 소노마 카운티에 살고 있습니다. 산타로사 인구는 175,000명입니다. 제가 달리고 자전거를 탄 후로 저는 온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우리 집에서 한 두 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웨스트 나인 스트리트 번식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번식지는 도심의 주요도로인 웨스트 나인 스트리트의 중간 분리대에 있는 적은 큰 나무에 매해 봄마다 많은 새떼들이 몰려오는 곳입니다. 아무 새나 오는 것이 아니라, 큰 새들이 옵니다. 백로, 해오라기, 소 해오라기, 그리고 검은 머리 왜가리 등입니다. 매해 봄마다 그들은 항상 같은 두 세개의 나무로 와서 빈틈없이 모든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수많은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부화시킨 어린 새들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떠납니다. 똑 같은 일들이 그 다음 해 봄에도 반복됩니다. 어린 새끼들은 예쁘고 어른 새들은 놀랍게 아름답습니다. 땅에 있을 때는 이상하게 보이지만 하늘을 날 때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매해 봄마다 그들은 ‘고향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들이 몇 달 동안 거기에 머무는 동안, 정착하고 전통에 자신들을 익숙하게 하고 자기들이 어디에 속했는지를 알게 도와주는 신비한 본능에 다시 한 번 연결되는 것입니다. 마치 사순절 기간과 같이 말입니다.

코비드 후에 얼마나 많은 목사님들이 목회를 그만 두거나 (아니면 그만 두려고 생각하거나)에 대한 토론과 통계를 내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났는지-그들이 교회를 아주 떠났는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지, 정규 예배시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저는 우리가 다시 한 번 정착을 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사순절은 저에게 그런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사역에 불만이 없습니다. 저는 목사가 된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러나 저 자신이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 2-3년간은 힘들었고 영적으로 약간의 피곤함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사순절 기간에 세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는, 올해는 금식을 하는 대신에 새로운 방법을 찾았는데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저는 작은 기도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하루에 몇 분씩 기도를 했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세상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 모르는데, 하나님의 광대하심을 되새기게 됩니다. 둘째는 사순절 6주 동안 매일 다른 분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를, 병 낫기를, 그리고 필요한 위로를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난 자신을 보는 것이 새로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의 설교를 요한복음을 본문으로 했는데  15장에서 절정에 이르는 것이지요.

언제나 그렇듯이, 성경에서 반복되는 것은 중요한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것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예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라는 설교를 요한복음 15장에서 하실 때 10개 구절에서 10번이나 menein이라는 동사를 사용하셨습니다. 거하라, 붙어 있으라, 머무르라, 계속하라, 연결되어 있으라. 아니면 성경학자 데일 부루너가 늘 말하는 것처럼 너의 집으로 삼아라. 예수님과 함께 머무르라. 예수님을 너의 집으로 삼아라.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성경, 기도, 예배, 교제. 예수님으로 너의 집을 삼아라.

저에게는 영적인 피곤함과 싫증 혹은 멀어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효약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백로, 해오라기, 소 해오라기, 그리고 검은 머리 왜가리에게 자연스러운 것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로 돌아가면 됩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우리를 혼란하게 하는 것을 내버려두고, 잠시 뒤로 물러나서 다시 발붙이고 우리를 전통에 익숙하게 하고 우리가 속한 곳이 어디인지 깨닫기 위해서 집으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집에서. 예수님과 함께. 우리가 정기적으로 거기로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목회를 하면서 인내할 준비가 전혀 안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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