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제가 기억하기로는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는 ‘진짜 중요한 것은 중요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주에 저는 타운에 두 군데 있는 죽이는 커피샵에서 친구를 만나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커피를 원하신다면 스타벅스로 가십시오. 그러나 북가주에서 좀 더 나은 분위기에서 커피를 음미하시려면 죽이는 커피샵으로 가십시오. 매장의 음악은 1980년대의 강한 비트의 록뮤직이었습니다. 제 친구가 늦게 오는 동안 저는 책을 읽고 있었고 갑자기 음악이 바뀌었습니다. 그 음악을 알아 차리는데 몇 분이 걸렸고, 실제로 알게 되는데 몇 초가 더 걸렸습니다. 그 음악은 바로 북치는 작은 소년의 원본이었습니다. 아시지요? “노래하자 파라파팜팜.” 5월에 성탄절 음악이라니요? 젊은 바리스타들은 웃기 시작했으며, 한 친구가 음악을 바꾸려고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겸연쩍게 가게를 둘러 보기 시작했고, 제 눈과 마주쳤을 때 저는 미소를 띠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도저히 제 마음에서 떨쳐 낼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5월의 크리스마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좋게 여겨졌습니다.

성육신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나셨다는 것보다 더 큰 사실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이라고 부르셔도 좋습니다. 저는 절대적인 삼위일체론자입니다. 저는 성경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이 어디에나 계시다는 것을 찾아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기 원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기억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에 의심이 갈 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우리 앞에 어떤 미래가 놓였는지 불안해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증거를 보고자 빈 무덤을 총총걸음으로  갑니다 (아니, 달려 가거나 베드로와 요한처럼 달리기 내기를 할 것입니다).

저희 지역에서는 수십 년 동안 젊은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자 크리스챤 캠프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가르치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임재하시는 체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오늘날, 크리스챤 캠프는 아닌 캠프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말을 하는 것 같지만, 모든 종교와 모든 사고와 모든 표현과 모든 감정과 모든 믿음과 믿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민감하라는 말장난이지요. “무엇이 되었든지 네 안에 있는 하나님을 찾으라”라는 생각을 그럴 듯 하게 표현을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가정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그 곳에 보내는 것을 추천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을 갖고 있지 않고, 그들이 원하고 느끼는 것만 베우게 하기 때문입니다. 더 심하게 말한다면,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하다는 것을 찾도록 강요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예수님에 대하여 어떻게 한 것입니까?

어떤 이유인지, 제가 어디를 가든지 철학자 챨스 테일러가 인용되는 것을 듣곤 합니다. 아마도 그가 2007년도에 출판한 비중이 있고 저명한 세속의 세대라는 책 때문일 것입니다. 테일러는 20년 전에 말한 것은 세속족인 영역으로 완전히 들어가게 된 현재 문화의 문제는 영적인 믿음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너무나 많은 믿음의 종류와 인본주의 영성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단지 그 많은 선택 중에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문이 있고 궁금하신다면, 먼저 가능한 “신들”의 모든 신들을 생각하고, 그것들에 대하여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보십시요. 진실의 부페가 차려진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저는 인간과 신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 방법에 대하여 크게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차이점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한 그룹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자신들이 누구인가를 알아 내는 것입니다. 다른 그룹은 그들이 되고자 하는 자신들을 먼저 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한 그룹은 하나님의 주권아래 자신들을 두려는 것이고, 다른 그룹은 인간의 주권아래 하나님을 두는 것입니다. 한 그룹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반면에 다른 그룹은 인간의 상상과 같은 신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기 원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짜 중요한 것을 따라가는 것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건강하지 못한 모든 장소들로 표류하게 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뚜렷한 이분법의 문제 중 하나는 우리 인간이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는지에 있습니다.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사회에서 독실한 크리스쳔이라고 자천하는 사람들이 가장 심한 인종차별 주의자들이고, 불쾌하고 권력 지향적 존재들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생애처럼 살아야 하는 것을 부정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전하는 예수님, 우리의 사랑, 친절과 자비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고 오직 그 분만을 의지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혹시 노르웨이 작가로 풀리쳐 상을 수상한 욘 포세가 2023년에 쓴 단편 소설 샤이닝을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남자가 미친듯이 차를 빨리 몰아서 막히기 전에 숲으로 향하고, 차에서 맨발로 나와서 밤이 찾아 오는데 길을 잃어 버립니다. 결국 그는 소위 말하는 영적인 체험을 하면서 무엇인가를 만납니다. 빛과 평강을 가져다 주고 결국은 길을 찾게 만드는 그 무엇인 것이지요. 작가는 그 체험이 매우 강렬하다고 서술합니다만 무엇인가가 빠졌습니다. 막연한 신적인 존재는 만질 수 있지만, 누군지도 모르고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 이야기는 상당한 신비로 가득 차 있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시된 하나님에 대하여는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학자 짐 에드워즈가 말한대로 로마서 5장 8절은 함축된 복음을 단 네 단어로 설명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두 단어의 역사 (그리스도가 죽으심으로) 그리고 두 단어의 신학 (우리를 위하여). 정말 매우 능력있는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드리는데, 첫번째 단어가 … 그리스도입니다. 항상 그렇고 그래야 합니다. 과연 우리의 첫번째 단어입니까? 우리가 설교하고 가르치고 상담하고 예배를 인도하고 사람들과 나눌 때에 …. 우리의 첫번째 단어가 무엇인가요? 용서, 치유, 능력, 목적, 미래에 대한 확신,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 분 만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입니다.

5월이었고 바깥 기온은 75도였습니다. 그 가사는 종업원들이 음악을 끄기 전에 이미 죽이는 커피샵 실내에 가득 찼고 의자들과 테이블을 채웠습니다: 노래하자파람팜팜팜 기쁜 구주 성탄.” 5월의 완전한-크리스마스였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을 제일 중요한 것으로 만듭시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단 바움가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