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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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5년 전에 엘에이를 떠나서 북가주 작은 교회의 담임목사로 옮겼을 때,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결정이라기보다는 소명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살고 싶다거나, 어느 교회에 가고 싶다거나, 어느 교회가 비어있는지, 언제 옮겨야 하는지에 대한 결정을 경험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언제나 내가 느꼈던 것은 갑자기 소명의 문이 열렸고, 그 문으로 들어가야 할지 말지를 오랜 시간 그 문을 닫으려고 노력을 한 후에 결정해야 했습니다. 네 번이나 그런 이동이 있었습니다. 매번마다 복잡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특별히 저는 장기간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든지, 산타로사의 The Cove 이 교회로 부임하는데 가장 좋았던 것은 목회를 전념하고 행정이나 재산, 인사, 예산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주 화요일에 제 사무실로 갔습니다. 화요일은 보통 약속을 잡지 않는 날입니다. 조용히 일주일을 시작하여, 주일날에 있었던 일들을 돌아보고, 미팅을  정하고 준비하고 글도 쓰곤 하였습니다. 제가 사람들과 지내는 것을 좋아하지만, 일주일 중에 이날 하루 만은 그냥 조용히 지내는 것으로 삼고 있습니다.

화요일은 조용한 가운데 시작되었습니다. 아침 7시 20분에 사무실에 있는 촛불을 켜고 독서를 시작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남가주에 있는 목사 친구가 다가 올 모임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통화를 마친 후, 약간의 설교 준비를 하고, 교회 정원의 관개시설을 손 보려고 오는 자원봉사자 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남쪽 주차장에서 약간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두 대의 자동차와 오토바이 한 대가 있었습니다. 곧 이어 두 대의 소노마 카운티 보안관 차들이 그냥 쉬러 들어왔습니다. 그 두 명의 보안관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잠시 후에, 78세가 된 친구 팀이 한 달에 두 번 동네를 걸으며 대화하는 일정에 참석하고자 왔습니다. 동네를 돌고 교회로 돌아왔을 때, 같이 기도하고 그는 떠났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사찰 마뉴엘과 데레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한 주간의 교회 활동을 위하여 건물을 깨끗이 청소하느라 늘 바쁜 사람들입니다. 마침내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새신자 교실에 관련한 4개의 문자 메세지를 대답하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여 방금 집으로 돌아온 교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많은 이메일 가운데 3명은 바로 답장을 주어야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는 창고방 자물쇠를 고치려 문을 떼어내는데 밥과 마뉴엘과 함께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2시가 되어서 이사회 모임에 참여한 전국의 14명의 이사들과 두 시간 가까운 줌미팅을 하였습니다. 줌미팅이 끝나고 두 개의 택스트 메시지를 응답하고, 급하게 시내에서 4시에 만나기로 약속한 교인을 향해 갔습니다. 약속 후에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한 후, 앤과 저는 예정된 동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급하게 갔습니다.

왜 제가 이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제가 쉬고 보충하는 날이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32명을 대면으로나 영상으로 만났습니다. 32 번의 대화와 듣기, 격려해 주기, 격려를 받기, 사람들과 함께 또는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몇 가지는 예정된 것이었지만 대부분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루가 다 지나갈 때까지 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만남을 가졌는지 알지 못 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저는 제가 몇몇 분들은 제가 계획한 날에 끼어드는 방해자로 여겼습니다만, 그것이 바로 제가 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원하고 있으면서도, 그분들이 저의 하루에 중요한 시간을 차지한다는 것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복음서를 읽어보면, 예수님은 주위에서 돌아가는 다른 일에 방해되지 않고, 사람들을 맞아들이는 것에 매우 능숙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보고 계셨고, 관심을 가지고 바로 앞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기회를 좋아하셨습니다. 우물가의 여인, 바디메오, 소경으로 태어난 자, 마리아와 마르다, 비틀거리는 제자들, 밀려드는 군중들, 호전적인 종교 지도자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항상 예수님 앞에 있었고, 예수님은 그들을 보셨습니다.

저의 하루가 작고하신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몬타나 하이킹 중에 들려 주셨던 새 관찰에 과한 이야기가 생각나게 합니다. 그 이야기는 유진 목사님 책 한 두 권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유진목사님과 젠 사모님은 전문적인 새 관찰가를 손님으로 맞이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함께 새를 관찰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자리로 조용히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끝나고 나서 관찰기록을 비교하는 자리에서, 유진목사님은 그 날 한 마리의 새도 주위에서 보지 못한 것 같다고 사과의 말씀을 하셨답니다. 아마도 장소를 잘못 택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런데 그 전문가 친구가 웃으면서 이야기하기를 뭐라고요? 저는 17 종류의 다른 새들을 보았는데요, 보고 계셨나요?”

우리는 무얼 보고 있나요? 우리 주변에서 하루 종일 일어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이나 자연스러운 접촉으로 우리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그분들을 거룩한 순간의 사람들로 받아 들일 건가요? 아니면 그냥 일상적인 주위사람들이나 방해자로 지나칠 건가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단 바움가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