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의 중압감이 우리를 짓누를 때면 저는 “휄로쉽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곧바로 “휄로쉽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게 됩니다. 이 질문들에 대하여 답변은 누가 답변하느냐에 따라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왜 문제인가?”라는 제목의 시리즈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일은 어려운 시기에 가져야 할 신앙에 대하여 돌아볼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 주제에 대한 많은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포로생활을 하였고, 예수님 본인도 재판을 받으셨고, 숨은 제자들을 예로 들 수 있고, 심지어 초대교회의 인내에 대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하여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명령은 담대하라 내가 세상의 압박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즈음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게 힘이 됩니다. 몇 주 지나지 않아서 우리 교단은 기도하면서 “큰 천막”이 되는 복잡한 질문에 응답을 해야 합니다. 기다렸던 올림피아 헌의안에 대한 결정은 파괴력을 가진 파도로 커질 수 있는 작은 파장을 만들 것입니다. “휄로쉽은 누구인가?”에 대한 답에 대하여 저는 적은 수의 직원 중 하나이지만 휄로쉽은 네트워크 이상이라고 단호히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피난처입니다. 우리는 신학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PCUSA 교단 내에서 머무르기를 선택한 교회들와 목사님들을 위하여 360일 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의 일방적인 하향식 결정에 우리와 가까운 장로님들과 목사님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진다고 해도, 휄로쉽은 (직원들과 리더쉽이 바꾸는 작업 끝에) 역사적으로 복음주의였던 PCUSA 교회들과 리더들의 피난처를 발견할 수 있는 중심이 될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어떻게 하면 여러분들을 최선으로 섬길 수 있을까요? 어떻게 우리가 잘 알려드려서,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빅 텐트” 안에서 지각변동의 분열을 일으키는 도둑과 같은 날들을 지날 때 여러분의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휄로쉽이 역사적으로 성경의 복음주의적 해석을 하면서 교단에 남기로 맹세하고, 지역적이나 전국적으로 번성하는 커뮤니티인 것을 계속 지켜 볼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노회나 신학교와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과 만나고, 목사님들과 지도자들을 개발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지상대명령에 함께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를 놓고 기도할 것이고, 교회 개척에 대한 가능성을 연구해 나갈 것입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커뮤니티의 결속을 키워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몇 주 동안 흔들릴 것과는 상관없이 휄로쉽일 것이고, 우리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교회를 위하여 매우 강한 기초적인 지원을 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