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게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물속에서 느낍니다. 지구에서 느낍니다. 공기 중에도 냄새가 납니다…” 반지의 제왕 영화에서 시작하는 대사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몇 백 번을 보았기에 다 외웠습니다. 최소한, 영화를 보다가 졸다가 중간 부분에 깨기 전에 시작 부분을 백 번 이상 보았습니다. “공기 가운데 무엇인가 있습니다.”
대강절 절기에 무언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여기 저기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 시간 저 시간에 듣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것이고, 성스럽고, 하나님의 임재하심인데, 제가 일부러 찾으려고 하지도 길이나 나타난 장소도 아니었습니다. 최근에 다닌 몇 번의 여행동안 비행기와 공항에 가게 되었고, 거기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장소였고, 성령님의 인도를 기대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지요. 우리는,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 신앙에 대하여는 적대시하고 통계를 보면 교회에 다니는 것이 현저하게 줄어가고 있습니다. 대강절이 크리스챤의 기다리는 기간이라면, 공공장소에서 신앙을 찾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들을 잠시 뵙기 위해 시애틀에 갔던 거의 응급에 가까운 추수감사절 여행 후에, 금요일에 산타 로사로 돌아오기 위하여 아침 일찍 시애틀 공항으로 갔습니다. 예정된 비행기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서 음식과 식탁, 의자 그리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는 Great Hall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양쪽에 마주 앉을 수 있는 충전용 탁자에서 충전을 하려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몇 분 후에, “챠르”라는 여성이 맞은 편에 점심을 들면서 20미터 밖에서도 들을 수 있는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바로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그녀의 이름을 안 것은 그녀의 여행사 제복에 새겨져 있는 이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그녀는 자신의 언니에게 조카들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그 조카는 인생에서 힘든 일을 당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고 챠르의 부모님과 신앙에 대하여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눈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챠르가 언니한테 상황을 설명을 하면서, 분명한 예수를 믿는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왜 성경을 믿는지, 그리고 그녀의 인생에서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크게) 울려 펴졌습니다.
첫번째 수업을 행복하게 마친 후에, 비행기에 올랐고 내 옆자리에 앉은 코니라는 친절한 나이든 여성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경험이 많은 여행자로서, 저는 비행기에서 되도록 대화를 안 하는 편입니다.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낯선 사람에게 전도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저는 부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저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닙니다. 보통 저는 헤드폰을 껴서 대화하지 않고 방해를 받지 않고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잠을 청합니다. 헤드폰을 쓰고 성경책과 테블릿을 꺼내서 주일 설교를 위해서 떠오르는 생각을 적으려고 했습니다. 20분 정도 지나서 코니가 제 어깨를 쳤습니다. 속으로 탄식하면서 헤드폰을 벗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 (제 앞 테이블에 펼쳐 놓은 성경)을 읽고 있군요,”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이제 저는 대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코니에게 물었습니다. “성경이 얼마나 오래 당신의 좋아하는 책이었죠?” 코니는 길고 풍부한 스토리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짐작컨대 70년 전 이었습니다), 그녀는 힘든 과정에 있었고, 반항하는 시기였고, 나쁜 친구들과 함께 다니면서 모든 종류의 나쁜 일들을 했다고 했습니다. 다급한 상황에서, 그녀의 부모님들은 그녀를 사립 크리스쳔 고등학교에 입학시키셨고 … 물론 그녀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지만요. 그러나 그 학교에 가서 그녀는 젊은 영어 선생님한테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 곳에서 2년 동안 코니는 그 선생님에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에 대하여 아주 쉽게 전해 주었고 코니가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도록 권유하였습니다. 그 선생님은 10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최근까지 코니와 연락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동안 무엇인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인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앤과 저는 또 다른 여행을 하려고 동부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을 준비하고 있을 때, 네온 색깔의 야구모자를 쓴 남성이 걸어 왔습니다. 그 모자에 쓰여진 큰 글자는 당당하게 “I LOVE JESUS!”라고 쓰여져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강절에 예수님이 거기에 계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결코 하나 하나 그 자체가 기적적인 사건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일들을 모아서 보니까, 제 안에 무엇인가 가져다 주었습니다. 갑자기 저는 무언가 또 다른 일들, 또 다른 하나님의 임재가 일어나기를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 보고, 그들의 대화의 단편적인 것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보고 있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 여러분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 어떤 상황이 바로 예수님이 음성이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저는 느낍니다. 깨닫습니다. 대강절 기간에 말입니다.
C.S. 루이스는 시인으로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의 장편의 시 “조류의 전환”이라는 시에서 하나님께서 조용히 무언가 큰 일을 행하시는 것에 대한 기대를 잘 서술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 위의 공기는 숨이 막힐 듯 검고 텅 비어 있습니다;
들판은; 화강암처럼 딱딱했고; 흙덩어리는 얼음으로 딱딱했고; 연못의 사초는 뾰족한 철제 막대와 같았다.
죽음과 같은 고요함이 베들레헴에서 퍼져 나갔다;
땅에서 매 순간 더 넓게 퍼져 나갔다;
성벽과 담을 넘어 캠프와 홀까지 고요함을 훔쳐갔다. 모든 혀가 멈춰 섰다 …
그리고 조류는 썰물 때 움직이지 않았다.”
느끼시나요? 들으시나요? 보고 계시나요? 예수님은 온 공간에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단 바움가트너